삼국지 동이전 시대 연표

 


//서기 239년 

“景初二年”은 ‘景初三年’(239)의 誤記이다. 왜냐하면 『日本書紀』에 인용된 『魏志』와 『梁書』는 모두 “三年”으로 기재하였기 때문이다(石原道博, 2005:50). 景初 2년까지 약 50년간, 公孫氏가 요동에서 세력을 떨쳐 일시적으로는 독립하여 燕王을 자칭하였으므로, 왜국의 사자는 魏에 갈 수 없었다. 景初 3년 정월에 이르러 위는 본격적으로 공손씨를 공격하여 8월에 이르러서 드디어 승리를 거두고, 요동에서 낙랑, 대방에 이르는 지역을 위의 지배로 편입하였다. 이처럼 景初 3년에 요동, 낙랑 등 5군이 平州로 편제되어 위의 땅이 되면서, 왜국은 직접 위에 사자를 파견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(森浩一, 1985: 143~144)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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